서부 해안 연대기 - 보이스


서부 해안 연대기의 두번째 작품인 보이스. 첫번째 작품인 '기프트'가 정적인 느낌의 소설이었다면, '보이스'는 조금은 더 동적인 소설이었다. 이번 작품도 역시 '능력'에 대한 것 보다는 그 능력에 의해 생기는 갈등과 주위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이번에 더 동적이라고 느낀 이유는 아무래도 사건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왔기 때문이다. 전쟁이라고 해도 '봉기'였기 때문에 전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확실히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판타지에서 볼 수 있을법한 화려한 마법이라든지, 기술, 웅장한 전투씬은 없기 때문에 전쟁이라기 보다는 역시 '투쟁'에 어울린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여자였기 때문에 그 치열한 싸움은 주위에서 들은 얘기로만 서술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절제미.. 랄까?

오히려 사건의 중심에는 기프트의 주인공이었던 '오렉'이 있었다. 보이스의 주인공인 메메르보다는 오렉이 주인공인 느낌이다. 전쟁을 이끈 것도 오렉이었고, 진정시킨것도 오렉이었으며 시민들의 영웅도 메메르가 아닌 오렉이었다. 아무래도 작가가 오렉을 아주 좋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멋진 캐릭터다보니, 그럴 수 밖에..

그리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메메르라는 캐릭터가 꼭 필요했을까? 아무래도 사건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았기에 이런 의문이 들었다. 물론 발생한 사건에 의해 메메르라는 캐릭터가 개인적인 발전을 하는 것을 보여줄 순 있었지만, 사건 진행에는 크게 관여하지 못했다. 몇몇 역할을 해내긴 했지만, 꼭 메메르만이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프트'보다는 서술이 동적이고, 호흡이 짧고, 급하게(비록 기프트에 비해 상대적으로지만) 진행되었다는 점, 그리고 배경이 '식민지'였던 점에서 개인적으론 '기프트'보다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앞으로 세번째 작품인 '파워'가 남았는데, '파워'는 무려 장수가 앞 권에 비해 1.5~2배나 굵다. 아무래도 오렉,그라이와 함께 떠난 메메르가 다시 나오는 건 아닐까?

by 이야기꾼 | 2009/03/21 12:33 | 감상평 | 트랙백 | 덧글(1)

서부 해안 연대기 - 기프트


몇몇 사람들은 이 표지에 대해 욕을 하는가 보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보니 원판 표지하고 번역판 표지하고 다르다는 것. 그래서 찾아봤다. 어익후... 나는 이 표지를 욕하는 사람들에게 감히 한 마디 하고 싶다. 상술이라니 뭐라니 하지만 솔직히 소장품으로의 가치를 느낀다면 번역본이 훨씬 좋다. 뭔가... 원본의 실사 사진은(...) 절대적으로 번역본의 그림이 좋다. 찾아보길 바란다.

아무튼, 이제 속 내용으로 들어가보자면, 사람들이 표지가 '상술적'이다, 라고 말할만한 이유를 알 수는 있다. 우리나라 저급 양산형 판타지 이름인 듯한 '기프트'라는 제목에서 부터, 표지까지... 완전 타고난 능력으로 고난을 이겨내면서 사랑과 성공을 쟁취하는, 뭐 그런 이야기인 것 같은 늬앙스를 풍긴다. 나도 흥미 위주의 소설로써 이런 스토리는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소설이 이런데, 저급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의 문체, 구조 등이 저급하기 때문이다. 뭐, 그것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할 것이 아니므로 패스.
하지만 소설 '기프트'는 절대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지도 않거니와 다른 판타지와는 다르게 '정적'인 느낌이다. 물론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정적'인건 아니다. "해리포터"의 경우도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니고 단지 그 학교 내에서의 사건을 다룬 거지만 절대 '정적'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냐, 상황이 아주 긴박하게 서술되고 진행되고 많은 사건이 빈번히 터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프트는 그렇지 않다. 주인공 '오렉'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사건 중심'이 아니고 '내면 중심'으로 흘러 간다. 그래서 사건이 하나 터질때마다 주인공의 심리가 아주 많이 서술된다. 따라서 이 소설의 사건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의 분량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인물의 심리를 아주 많이 표현했다는 것이겠지.

사람들의 리뷰를 보다보면 이 소설이 '사회'를 다룬다고 많이들 얘기한다. 하지만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미국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몰라서 모르겠다고 하는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딱히 '사회'를 크게 다루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여타 다른 영지와 교섭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장면에서 그것을 다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딱히 그런데에 관심이 없었다. 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능력'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난 주인공의 능력이 언젠가는 한 번 터지겠지, 터지겠지 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이 쯤 해서 소설의 내용을 조금은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주인공 '오렉'은 기프트, 즉 선물이라고 칭해지는 능력인 '되돌림'을 물려받는 혈통이다. 자신의 아버지도 이 능력을 받았으며, 이 오렉도 곧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남에 따라 오렉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 늦어지게 된다. 오렉은 이 것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날, 엄청난 힘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자신은 믿지 못했지만, 주위 여러 정황이 '오렉'이 썼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하다. 하지만 오렉은 이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전혀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이 강력한 힘이 아무렇게나 발휘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스스로 눈가리개로 눈을 봉인한다. ...

대충 소설의 요약을 하자면 이 정도이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정말 소설의 '사건'들은 아주 간결하고, 짧고, 별 것 없다. 하지만 이 정도 사건을 301페이지에 달해서 서술했다. 물론 내면만으로 이 정도를 서술한 건 아니다. 주인공이 나중에 '저지대'로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기본 배경에는 '어머니'와 '에몬'의 역할이 있는데, 주인공의 행동이나 성격의 바탕이 되는 사건들도 여럿 적혀 있다. 이런 점도 꽤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소설 속에 딱히 '우연'이라고 할 것이 없다. 대부분 근거가 있는 것들이다. 우연이라고 해도 에몬이 우연히 주인공의 영지로 흘러 들어왔다는 점 정도?

소설의 반전인 내용이지만, 하여튼 소년인 오렉은 자신에게 능력이 없음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영지를 위하여 자신을 이용했음을 깨닫고는 아버지에게 복종만을 하지 않고 이제는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 때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평생 믿었던 아버지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 결국 아버지는 다른 영지와의 싸움에서 죽고, 자신은 '어머니'의 고향이자, 에몬이 부추겼던 저지대로 여행을 결심한다. 자신의 새로운 '능력'인 시를 짓는 능력으로. 하지만 난 여전히 이것이 '반전'인가, 하고 의문이 든다. 아버지는 끝까지 오렉을 속였다는 사실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아꼈기 때문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럿 재밌는 '요소'가 많이 있다. '요소'이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서 빵 터지는 그런 부분은 없다. 하나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간결하고 평이한 문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민희'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들은 정말 유쾌한 부분이 많아서 말 그대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번역본이라 작가의 유머가 확실하게 와닿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아무튼 딱히 웃기는 부분은 없다. 하지만 뭐랄까, '그라이'가 제시한 의문인, '능력은 원래 다른 용도로 쓰이던 것이 아닐까' 라든가, 저지대의 삶을 계획하는 소년의 꿈이라든지, '오렉'과 '그라이'의 미묘한 러브스토리라든지. 뭐 찾아보면 꽤 많다. 어쩌면 미국인의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직설적이지 않고 은유적인 문체 덕분에 이 소설이 아주 뜬 것이 아닐까.

이 소설에는 맨 앞 페이지에 세계관에 관한 지도가 한장 그려져 있다. 서부 해안을 그린 것인데, 이 '기프트'의 무대가 되는 곳은 그 지도의 '점'에 해당하는 부분밖에 되질 않는다. 따라서 아마도 뒷 이야기인 '보이스', '파워'에서 본격적으로 서부 해안을 무대로 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다음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by 이야기꾼 | 2009/03/17 10:28 | 감상평 | 트랙백

포르토벨로의 마녀


포르토벨로의 마녀.

파울로 코엘료를 처음 접한 작품이 '연금술사' 였다. 이 때 연금술사는 내게 엄청난 작품이었다. 그 안에 담고 있는 주제라든지, 상황, 주인공이 나와 너무나도 일치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 리뷰는 '포르토벨로의 마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연금술사'에 감동했다는 것만 알리고 접겠다.

아무튼, 나는 파울로 코엘료를 믿으면서 이 책을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한 권 샀다. 사실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파피용'을 사서 볼까 하다가, 최근에 그 작가의 '신'을 읽었던 터라 조금은 다른 느낌을 원했기 때문에 산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내게 그렇게 큰 영감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이 소설이 대부분 '여성'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많았기 때문일까? 분명 수많은 멋진 말과 교훈적인 말이 있었음에도 내게는 큰 감동을 주진 못했다. 아니면 내가 '연금술사'만큼의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였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셰린 칼릴'임과 동시에 '아테나'인 한 여성의 삶을 주위의 시선으로 서술해 나가는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글이 써져 있다. 이 여성을 찬양하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시샘, 질투하는 시선, 그리고 가르침을 주는 듯한 시선도 있었다. 단 하나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의 시선이 이렇게나 다르다.

주인공 '아테나'는 전형적인 현대의 여성이다. 여성상이라는 것이 어떻다, 하고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여성상과 현대적인 여성상은 많이 다르다. 뭐랄까, 당당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자신감이 있고 거침없다. 현대적인 여성상이 이런 것이냐, 라고 한다면 '그렇다'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여성상, 즉 조용하고 기품있고 순종적인 면모와는 많이 다르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아테나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에 사회와 충돌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아테나는 '마녀'로 불린다. 물론 마녀라고 부르는 건 기성 종교인들뿐이겠지만, 이건 현대 마녀사냥과 비슷했다. 아테나는 '어머니'를 신으로 내세우며(물론 신이 있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나' 라는 신앙을 내세웠다) 일종의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했다. 물론 아테나는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여성상을 알리려는 도중에 그렇게 된 것이다. 왜 그렇게 종교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수 세기에 걸쳐서 억압되어왔던 여성상에 대한 갈망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특히 여자들은 아테나의 등장에 아주 심취되어 있었다. 울기도 한 사람까지 있었다.

파울로 코엘료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그랬듯이, 억압되어 있는 사회의 면모를 아테나라는 여자를 통해서 일종의 폭로를 한 것이다. 마녀 사냥으로 일컬어지면서 억압되어 왔던 여성상. 기성 체계적인 종교들은 이를 억압해 왔던 것. 아니,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가 그랬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그런 것이다.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인 것이다.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깨우치고, 그에 맞게 살아라 라는, 주위의 것에 조화될 필요도, 맞춰 살 필요 없이 자신만의 삶을 가져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것들은 여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도 충분히 내면에 '어머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나'이며 '내'가 '어머니'인 것처럼.

by 이야기꾼 | 2009/03/13 12:14 | 감상평 | 트랙백

미스트

결말도 함께 게시했으니 앞으로 볼 의향이 있으신 분은 클릭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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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꾼 | 2009/03/11 01:46 | 감상평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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